
한때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베트남 경제가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도이머 이 정책 이후 고속 성장을 이어온 베트남이 왜 전문가들로부터 낙관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지, 그 본질적 이유를 분석합니다.
도이머 이 정책이 만들어낸 성장의 기반과 외국인 직접 투자 의존 구조
1975년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북베트남 공산 정권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로의 재편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사기업 통제, 집단 농장화, 산업 및 농업 인프라 파괴는 생산량 급감과 식량 부족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소련의 원조에 기대어 버티던 베트남은 1980년대 들어 소련의 힘이 약화되고 냉전이 완화되면서 원조가 줄어들자 경제가 더욱 추락했습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 454%, 인구의 60% 빈곤, 1986년 1인당 GDP 약 84달러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86년 베트남은 '도 이머 이(쇄신)' 정책을 도입하며 사유 재산과 민간 기업을 허용하고 자본주의 자유 경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 지향 시장 경제'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한 것과 다름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개혁 개방과 유사한 노선이었으며, 이후 베트남은 식량 부족 국가에서 쌀 수출국으로 전환되고 캄보디아 철수를 통해 국제 관계를 개선하며 외국 자본 유치에 성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그리고 2010년대 이후 중국의 인건비 상승이 본격화되면서 베트남 경제는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삼성은 2008년 박닌성에 휴대폰 공장을 설립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현재 베트남은 삼성 휴대폰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며 삼성은 베트남 최대 외국인 직접 투자 기업이자 베트남 1위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이키 역시 신발의 50%, 의류의 약 3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구, 저렴한 노동력, 공산당 일당 체제로 인한 정치적 안정성이 생산 공장 유치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장 모델은 처음부터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직접 투자에 의존한 수출 중심 전략은 초기 산업화에는 유효했지만, 베트남 자국 기업의 기술 내재화와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하청 구조에 머물렀고, 국영기업 중심의 경직된 경제 구조는 민간의 역동성을 지속적으로 제약해왔습니다. 도이머이라는 위대한 전환이 가져온 성장의 과실이 자국 기업의 역량 강화로 연결되지 못한 채, 외국 자본의 생산 기지라는 역할에 머문 것이 오늘날 베트남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중진국 함정, 베트남 성장 모델의 구조적 한계
중진국 함정이란 저소득 국가가 중간 단계까지 성장했다가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성장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이 애매해지면서 저소득 국가로 회귀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중진국은 인건비가 더 이상 싸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프라나 인력의 질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한 어중간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에 양극화 심화, 저출산·고령화, 부정부패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까지 겹치면서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의 비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분배와 성장의 딜레마 속에서 돌파에 실패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입니다.
세계은행의 3I 전략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Investment(투자)'로, 저소득 국가가 인프라에 투자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고도 성장을 이끌어내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Investment + Infusion(투자 + 주입)'으로, 다국적 기업 투자에서 선진 기술과 비즈니스를 국내로 가져와 자국 경제에 체화시키고 자국 기업이 탄생하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Investment + Infusion + Innovation(투자 + 주입 + 혁신)'으로, 글로벌 경쟁력 있는 기술력이나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단계입니다.
문제는 베트남이 현재 사실상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성장세나 인건비 상승 수준으로 볼 때 두 번째 단계까지 와 있어야 하지만, 전자제품 수출의 98%가 외국 투자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등 자국 기술 기반의 수출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과거와 달리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기지 국가에 기술을 이전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직접 투자가 기술력 향상의 사다리 역할을 하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베트남 현지 기업 대부분은 핵심 기술이나 부품 생산이 아닌 포장, 청소, 경비 등 2, 3차 협력 업체 서비스 제공에 그치고 있습니다. 베트남 최대 민간 기업인 빈 그룹은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지만, 수출보다는 내수에 집중하며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고 자동차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는 등 기술 개발을 주도할 기업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조차 중진국 함정에 갇혀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베트남은 중국과 비교해도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23년 약 8%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베트남의 미래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핵심 이유입니다.
인적 자본 투자 부족과 기술 자립 없는 성장의 한계
중진국 함정을 돌파하기 위한 핵심 기반은 글로벌 경쟁력 있는 기술이며, 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업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미래를 보고 투자할 줄 아는 기업가 역량, 위험 감수 의지, 그리고 양질의 인력이라는 어려운 여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베트남은 이 모든 측면에서 심각한 결핍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GDP 대비 R&D 지출은 0.44%에 불과합니다. 이는 한국(5%), 대만(4%)은 물론이고 태국(1.2%), 말레이시아(1%)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 베트남 정부가 이를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술 격차가 너무 커서 자체 기술 개발만으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설령 특정 분야에서 따라잡더라도 이미 선진국 기업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 있어 결국 중진국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교육·인재 육성 체계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베트남의 대학 진학률은 30% 미만에 그치며, 혁신을 이끌어낼 개발 인력도 극히 적은 실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배출된 유능한 인재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도 산업화에 필요한 수준의 인적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산업 고도화는 지속적으로 지연되고 있습니다.
대외 환경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인건비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메리트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리쇼어링 정책은 제조업 기지로서의 베트남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의 현실화로 인해 앞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2010년대 중후반 이미 한 차례 인건비 상승 문제로 투자 유치 동력이 약화되는 조짐이 있었고,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외부 요인이 '포스트 차이나'로서의 기회를 제공하며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러한 외부 요인에만 기댄 성장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결국 베트남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성장 둔화가 아니라 발전 모델 자체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제조업의 기술 자립, 국영기업 중심 경직된 구조의 제도 개혁, 그리고 고도 산업화를 뒷받침할 인적 자본 투자라는 세 가지 근본적 전환 없이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수식어는 그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베트남 경제의 미래는 단순히 성장률 수치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도이머이 정책으로 시작된 성장의 여정은 외국인 직접 투자와 저렴한 인건비에 의존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중진국 함정 돌파를 위해서는 제조업 기술 자립, 제도 개혁, 인적 자본 투자라는 근본적 전환이 시급합니다. 기적을 기다리기보다 구조를 바꾸는 선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qGWAlTUk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