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벤츠, BMW 등 유럽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이 잇따라 대규모 적자와 생산 축소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전환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유럽 자동차 산업은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외부 충격과 내부 전략 실패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스텔란티스·르노·폭스바겐이 보여준 전기차 전략 실패의 민낯
유럽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사례는 스텔란티스입니다. 프랑스 푸조가 속한 다국적 기업 스텔란티스는 2023년에 약 40조 원의 사상 두 번째 규모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경영 부진이 아니라, 잘못 설계된 전략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스텔란티스는 2030년까지 유럽 내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이른바 '전기차 올인' 전략을 공표하고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기차 판매 비중은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19.5%에 그쳤습니다. 소비자 수요가 공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스텔란티스는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전기차 사업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고, 이 사업 재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이 30조 원이 넘는 적자로 이어졌습니다.
스텔란티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프랑스 르노 또한 지난해 18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탈리아의 승용차 생산량은 7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독일 폭스바겐은 88년 역사상 처음으로 드레스덴 공장을 폐쇄하고 인력을 30% 감축했으며,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28% 감소했습니다. 벤츠와 BMW 역시 각각 영업이익이 40% 이상, 11.5% 감소하는 등 전기차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유럽 자동차 산업의 이 같은 실패는 단순히 '전기차 전환이 어렵다'는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 수요 분석 없이 정치적 목표에 맞춰 무리하게 설정된 일정, 그리고 충분한 생산 효율화 없이 단행된 과잉 투자가 핵심 문제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과 성능의 전기차를 제때 공급하지 못한 채 규제 일정만 앞당긴 전략은, 결국 기업 재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전기차 올인 전략의 실패는 기술 역량의 부재가 아니라 전략적 판단의 실패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BYD가 이끄는 중국 전기차의 유럽 시장 잠식과 구조적 위협
유럽 자동차 산업의 내부 혼란은 중국 전기차의 공세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중국 전기차의 유럽 판매량은 급성장하며 지난해 대비 두 배 증가했고, 전체 유럽 시장의 6%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BYD는 독일에서 706%, 영국에서 485%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SAIC를 포함한 중국 브랜드들은 현지 생산 없이도 저가 모델을 대량 공급하며 유럽 브랜드의 중저가 라인업을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은 단순한 저가 전략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격 경쟁력과 배터리 기술 우위를 동시에 확보한 것이 핵심입니다.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은 안전성과 가격 면에서 유럽 경쟁사를 앞서고 있으며, 대규모 국가 보조금을 바탕으로 한 공급망 수직계열화는 유럽 기업들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적 우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맞서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중국이 생산하지 않는 디젤차 부활을 대안 중 하나로 선택했습니다. 이는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당분간 디젤차를 통해 시장을 방어하고 시간을 벌려는 임시방편적인 전략입니다. 디젤차의 부활이 장기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스텔란티스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본질적 문제가 있습니다. 유럽 자동차 산업이 현지 배터리 공급망 구축과 고급화 전략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속도와 비용 면에서 중국을 따라잡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중국은 10년 이상 국가 차원에서 전기차 생태계를 육성해 왔고, 그 결과로 축적된 규모의 경제와 기술 성숙도는 유럽이 3~5년 안에 뛰어넘기 어려운 격차입니다. 단순히 중국 전기차를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유럽 산업이 자신의 구조적 한계를 직시하고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할 시점입니다.
EU 반보 조금 관세와 상업 가속화법(IAA)을 둘러싼 기싸움
유럽연합(EU)은 중국 전기차의 급속한 시장 잠식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적 방벽을 세우는 데 나섰습니다. 중국 전기차는 이미 중국 정부 보조금을 이유로 최대 35%의 반보 조금 추가 관세를 부과받은 상태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EU는 중국 전기차가 유럽 전기차 보조금을 쉽게 받지 못하도록 '상업 가속화법(IAA)'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메이드 인 유럽' 인증을 받기 위해 유럽 내 생산 부품 비중을 7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사한 생산주의 규정으로, 사실상 중국 브랜드가 유럽 보조금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조치입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중국 정부와 업계는 EU의 새로운 생산주의 규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해당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법안이 통과될 경우 반격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양측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유럽의 실질적 피해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에서만 자동차 관련 일자리 10만 개가 사라지는 등,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기업 실적 문제를 넘어 유럽 각국의 고용과 사회 안정에 직결된 문제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냉정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반보 조금 관세와 상업 가속화법(IAA)은 시간을 벌어줄 뿐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관세 장벽은 중국 브랜드의 진입을 늦출 수 있지만, 유럽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여주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무역 보복을 불러일으킬 경우, 중국 시장에서 여전히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규제 중심의 방어적 접근보다는, 기술 혁신과 생산 효율 개선에 과감히 투자하는 전략이 유럽 자동차 산업의 실질적 재건에 더 유효한 길임은 분명합니다.
유럽 자동차 산업의 현재 위기는 전기차 전략 실패, 중국 전기차의 구조적 경쟁 우위, 그리고 규제 중심 대응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겹쳐 나타난 복합 위기입니다. 관세와 상업 가속화법(IAA)은 단기 방어책에 불과하며, 유럽이 기술 혁신과 생산 효율 개선에 더 과감히 투자해야만 구조적 반전이 가능합니다. 중국의 공세는 위협인 동시에, 유럽 산업이 스스로를 혁신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출처]
유럽 자동차 위기 관련 분석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4oScIU2VKyU